반도체 나노패턴 빠르고 정확하게 그린다
기사에 : 02/07/2019
반도체를 만들 때에는 나노미터(nm, 1nm는 10억 분의 1m) 크기의 규칙적인 구조인 ‘나노패턴’을 만드는 과정이 있다. 핵심 제조 과정 중 하나지만 제조 가격이 비싸 점점 늘어나는 수요에 대응하기가 어려웠는데, 국내 연구팀이 나노패턴을 넓은 면적으로 값싸고 효율적으로 제조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다.
김소연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에너지및화학공학부 교수와 김예찬 화학공학과 연구원, 권석준 KIST 책임연구원, 허수미 전남대 교수팀은 미세한 고분자 사슬이 자신들끼리 서로 모이거나 밀어내는 성질을 이용해 스스로 특정 구조를 만드는 ‘자기조립성’을 활용해 나노패턴을 만드는 방법을 개발했다. 기존보다 빠르고 저렴하게 패턴을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방식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혔던 오류 수정도 저절로 이뤄져 넓은 면적의 소자를 정확히 만드는 새로운 공정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나노패턴은 실로콘 기판(웨이퍼)에 그림을 그리듯 회로 패턴을 그리는 방식(리소그래피)을 많이 쓴다. 하지만 공정이 복잡하고 비용이 비싸다는 한계가 있어 대체 기술이 널리 연구되고 있다. 대표 후보가 김 교수팀이 연구중인 고분자를 이용한 자기조립 방식이다.
이 방식은 나노패턴을 쉽고 싸게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자의 성능을 결정하는 크기나 구조, 모양을 쉽게 조절할 수 있고 재료를 바꾸는 데에도 유리해 각광 받고 있다. 다만 나노패턴을 정렬하는 과정과 결함이 생겼을 때 이를 수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활용되지 못했다.
연구팀은 공정을 두 단계로 나눈 뒤 각각의 문제를 해결하는 공정을 적용했다. 먼저 블록공중합체의 박막 위에 가로로 밀어주는 힘을 가해 나노패턴에 방향성을 줬다. 마치 황무지 위를 커다란 빙하가 쓸고 지나가면 한쪽 방향으로 쓸린 무늬가 생기는 것과 비슷하다.
이어 톨루엔 등의 액체를 증기로 만든 뒤 쐬게 해 고분자 박막의 내부에 침투시켰다. 이 과정에서 박막이 부풀어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공간이 조금 넓어졌는데, 덕분에 고분자 사슬이 스스로 움직이면서 가장 안정한 배치인 적절한 간격을 둔 패턴으로 재배열됐다. 만원 버스에서 꼼짝 못하게 엉켜 있던 사람들이 여유가 생기면 스스로 손잡이를 중심으로 일정한 간격으로 자리를 다시 잡는 것과 비슷하다. 이 과정에서 다소 불규칙하게 엉켜 있던 나노패턴이 일정한 간격으로 깨끗이 정렬됐다.
연구팀은 이 방식을 통해 어른 엄지손톱 크기와 비슷한 약 1.5cm2의 넓은 소자에 나노패턴을 새기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이 실제로 이렇게 완성된 소자의 패턴이 제대로 된 방향성을 지니고 있는지, 결함은 없는지 확인한 결과, 약 10분 정도 만에 방향성은 높아지고 결함은 대폭 줄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논문 제1저자인 김예찬 연구원은 “공정은 대단히 단순하지만,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미지를 분석하고 광학 측정을 해본 결과 대면적에서 우수한 패턴을 형성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김소연 교수는 “반도체뿐만 아니라 빛을 전기로 바꾸는 ‘광전소자’나, 금속 내의 자유전자가 집단으로 진동하는 성질을 이용하는 소자인 ‘플라스모닉 소자’에 응용해 태양전지와 디스플레이 등의 효율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14일자에 발표됐다.